밥맛이 없고 자꾸 살이 빠진다는 어르신께
허리 아파서 오신 어르신 진맥을 하다 보면, 손목이 예전보다 가늘어져 있을 때가 있습니다. 여쭤보면 대답이 비슷합니다. "밥맛이 없어. 한 공기 먹기가 힘들어." 살이 빠지는 것도 모르고 계시다가 옷이 헐렁해져서야 아신다고요.

검사를 받아도 별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잘 드시고 운동하세요" 하는 말씀을 듣고 오십니다. 맞는 말인데, 밥맛이 없어서 못 드시는 분께는 그것만으로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그냥 나이 탓만은 아닙니다
요즘은 이런 상태를 노쇠, 근감소증이라고 부릅니다. 먹는 양이 줄고, 근육이 빠지고, 힘이 없으니 덜 움직이고, 덜 움직이니 더 안 드시게 되는 순환입니다. 이 순환에 들어서면 감기 한 번, 넘어짐 한 번에 회복이 더뎌지기 쉽습니다. 어르신 낙상을 그렇게 조심하라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한의학은 이 상태를 오래전부터 다뤄왔습니다. 기운이 처지고 입맛이 없는 것을 기허(氣虛)로 보고, 보중익기탕이나 육군자탕 같은 처방을 바탕으로 삼습니다. 비위, 그러니까 소화 기능을 돕는 방향의 처방입니다. 일본에서는 고령 환자의 식욕부진에 이런 처방을 오래 써왔습니다.
물론 같은 약을 누구에게나 그대로 쓰지는 않습니다. 속이 차서 못 드시는 분과, 열이 떠서 입이 마르고 안 드시는 분은 접근이 다릅니다. 체질을 먼저 보는 이유입니다.
한약도 건강보험이 됩니다
어르신들이 한약 이야기를 꺼내면 제일 먼저 하시는 말씀이 "비싸잖아"입니다. 지금은 첩약 건강보험이 시행돼서, 몇 가지 병은 보험으로 한약을 드실 수 있습니다.
허리 디스크, 만성 소화장애, 알레르기 비염, 안면마비, 중풍 후유증, 그리고 생리통. 마지막 하나는 어르신보다 따님께 해당되겠지만, 나머지는 어르신들께 흔한 병들입니다. 이 경우 10일분(30봉) 한약의 본인부담이 4~6만 원 정도이고, 1년에 두 번까지 적용됩니다.
식욕부진 자체는 아직 보험 항목이 아닙니다. 다만 소화가 안 돼서 못 드시는 분은 소화장애로, 허리가 아파 못 움직이시는 분은 디스크로 진료를 받으면서 기력까지 함께 살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디에 해당하는지는 오시면 먼저 봐드립니다.
보호자분께
부모님이 밥을 반 공기도 못 드신다, 몇 달 새 얼굴이 홀쭉해졌다, 자꾸 넘어지신다. 이 셋 중 하나라도 보이면 한번 살펴보시는 게 좋습니다. 살은 빠지기는 쉽고 다시 붙기는 어렵습니다. 걸어서 오시기 힘든 분은 방문진료도 상의해 드립니다.
저는 이 동네에서 20년 넘게 진료했습니다. 젊어서 시장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이제 어르신이 되어 오십니다. 그분들이 밥 한 그릇 맛있게 드시는 것, 그게 제가 바라는 겁니다.
※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나누기 위한 것으로, 특정한 치료 효과를 약속하지 않습니다. 건강보험 적용 여부와 금액은 개인 상태와 제도 변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실제 진단과 처방은 진료를 통해 결정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