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블로그/칼럼 › 보약/웰니스
한약과 간 손상, 67만 명의 진료 기록은 뭐라고 말할까
블로그 2026년 9월 16일

한약과 간 손상, 67만 명의 진료 기록은 뭐라고 말할까

권 일
의료 감수 권 일 대표원장

지난번 글에서 "한약 먹으면 간 나빠지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답을 드렸습니다. 그 뒤로 몇 분이 더 물으셨습니다. "그 연구는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 얘기고, 저처럼 그냥 한의원 다니는 사람은요?" 좋은 질문입니다. 마침 그 질문에 답이 되는 연구가 올해 나왔기에, 오늘은 이 연구 한 편을 제가 직접 읽고 풀어드리려 합니다.

67만 명의 진료 기록을 들여다본 연구

2025년 1월, 국제 약리학 학술지 『Frontiers in Pharmacology』에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과 단국대학교 연구진의 논문이 실렸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서 2011년부터 2019년 사이에 독성 간질환 진단을 받은 사람 67만 2천여 명을 찾아, 그분들이 진단 전 90일 동안 어떤 의료기관을 다니고 어떤 약을 받았는지 추적한 연구입니다.

이 연구의 방식은 조금 특별합니다. 한약을 먹은 사람과 안 먹은 사람을 비교한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의 시간을 비교했습니다. 약을 받은 뒤의 기간과 받지 않은 기간을 견주어, 약을 받은 직후에 간 손상 진단이 얼마나 더 몰리는지를 본 것입니다. 체질이나 생활습관처럼 사람마다 다른 조건이 비교를 흐리지 않도록 고안된 방법입니다.

숫자는 이렇게 나왔습니다

결과는 "약을 받은 뒤 진단이 몇 배 몰렸는가"라는 비율로 나옵니다. 1.0이면 약을 받기 전과 후에 차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 한의원·한방병원 방문 뒤 3~15일: 1.01
  • 한약 처방을 받은 뒤 3~15일: 0.99

두 숫자 모두 1.0에 붙어 있습니다. 연구진은 같은 방법으로 치과 방문도 계산했는데 역시 1.0 부근이었습니다. 치과 치료가 간을 상하게 할 이유가 없으니, 이 방법이 엉뚱한 신호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확인인 셈입니다. 논문은 한의 기관 방문이나 한약 처방 뒤에 간 손상 위험이 늘어나는 경향은 관찰되지 않았다고 보고했습니다.

한약 복용 전후 간손상 위험도 1.01 — 연구 기간 2011~2019년, 건강보험 자료 672,411명

다만 이 부분은 눈여겨봐야 합니다

연구진은 한 가지를 따로 짚었습니다. 이미 간질환이 있던 분들만 따로 보면, 한약 처방 뒤 특정 기간에 비율이 1.16으로 조금 올라갔습니다. 큰 숫자는 아니지만 0이 아닙니다. 그래서 논문은 한의사가 처방 전에 간 병력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썼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이 논문에서 가장 실용적인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연구가 말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자료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한약제제, 그러니까 가루나 알약 형태의 보험 한약 56종에 한정됩니다. 한의원에서 개인에 맞춰 달여 드리는 탕약은 이 자료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또 진단명 기록만으로 간 손상을 가려냈기 때문에 실제 검사 수치까지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이 연구를 "한약은 무조건 안전하다"는 증명으로 쓰는 것은 논문이 말한 범위를 넘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보다 좁고 정확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합니다

이 연구가 제게 남긴 결론은 두 줄입니다. 첫째, 간이 건강한 분이 한의원에서 처방받은 한약을 드시는 것은 진료 기록상 간 손상 위험을 높이지 않았다. 둘째, 간질환이 있는 분은 처방 전에 반드시 알려야 한다.

둘째 줄을 지키기 위해 시온부부한의원은 처음 오시는 분께 간 병력과 드시는 약을 여쭙고, 걱정되시는 분은 소량의 혈액으로 간·신장 수치를 당일 확인해 드립니다. 탕약처럼 연구 자료 밖에 있는 처방일수록 확인하며 드시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검사 절차는 지난 글과 장비 소개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한약이 걱정되시면 그 걱정을 진료실로 가져오세요. 숨기지 않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 이 연구가 가르쳐준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입니다.


※ 이 글은 학술 논문 한 편(Yang T 외, Front. Pharmacol. 2025;16:1498124)을 일반 독자를 위해 풀어 쓴 것으로, 특정한 치료 효과나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연구 결과는 집단 통계이며 개인의 병력과 복용 중인 약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므로, 실제 처방과 검사 계획은 진료를 통해 결정해 주세요. 복용 중 피로, 황달, 소변 색 변화 등 평소와 다른 증상이 있으면 바로 알려주세요. 사진 자료는 대한한의사협회가 제작·배포한 것입니다.

고민되는 증상이 있으신가요?

시온부부한의원에서 1:1 맞춤 상담을 받아보세요.

권 일

권 일 대표원장

26년간 한의원 진료를 이어오며, 사상체질을 바탕으로 만성질환과 체중 관리를 중심으로 진료하고 있습니다.

의료진 소개 더보기 →

관련된 다른 글